중국 읽기

이름 : 김재윤
제목 : 중화요리에 담긴 중국
중화요리에 담긴 중국

지은이 : 고광석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사
출판일 : 2002. 6. 20
값 : 10,000원
다읽은날 : 2003. 3. 31

  중국에 가져온 여러권의 책들 중에서 유독 이 책을 먼저 읽게된 것은 당장 눈앞에 닥친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중국 식당에 가서 메뉴를 펼치면 아는 음식이 단 한 개도 없으니 먹고살 일이 막막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장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절박한 심정으로 이 책을 들게된 것이다.

  이 책은 먼저 1부에서 중국이 음식을 그토록 중요시하는 이유를 설명한 후 중국 역사속의 음식 이야기를 풀어간다. 2부에서는 지역별로 광동요리와 사천요리, 상해요리 그리고 북경요리로 나누어 각 지역의 유명한 요리에 대해 유래와 조리법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궁중요리와 기타 특이한 요리에 대한 설명도 빼놓치 않고 있다. 특히 3부에서 설명하고 있는 중화요리 이름 풀이는 실질적으로 중국식당의 메뉴를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저자가 밝혔듯이 중화요리의 광범위한 분야가 이 책 한권으로 모두 이해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으로 인해 중국음식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진 것은 사실이다. 한 개인의 경험이지만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나눔으로써 훌륭한 지식이 된 것에 감사한다.

[요약]

1.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
  중국은 간단히 정의를 내리기에는 너무 크고 많다. 중국인들은 그것을 땅은 크고 물자는 풍부하다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자신과 오랑캐를 구분하는 기준을 혈통보다는 문명에 두었다.

  우리가 삶의 요소를 세가지로 압축할 때 의식주라고 하는 데 반해 그네들은 식의주라고 한다. 우리가 입는 것이라는 껍데기에 무게를 둔다면 그네들은 먹는다는 실속에 비중을 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중국 역사상 명군으로 이름난 청나라 강희제만 하더라도 미식가로 유명하다. 임금이 그러하니 이름난 학자나 예술가, 정치가 중에서도 식도락가들이 즐비하다. 이러한 문화적 분위기에서 뜸을 들이며 발달한 것이 중국 요리를 낳은 원동력이 된 것이다.

  중국은 예로부터 의식동원이고 음화식덕이라고 생각했다. 의약과 먹는 것은 뿌리가 같고, 마시고 먹는 일은 덕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한약재 점포에서 건어물들을 함께 취급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국 고대 기록인 서경의 홍범편에 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여덟 가지 사항의 으뜸은 먹는 것이요, 둘째는 재물이다.”라는 글이 나온다. 중국에서는 백성이 굶게 되면 나라에 반란이 일어났고 그 결과는 왕조의 변화로 이어졌다. 참을성이 많다고 소문난 중국 사람도 굶는 것만큼은 못 참았던 것이다.

  중국인은 타고난 식도락가이다. 그들은 참으로 먹는 것을 즐기고 이것을 감추지 아니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어엿한 위치에 있는 이들도 직접 칼을 들고 요리하기를 즐긴다. 심지어 당의 현종은 자신이 요리를 만들어 이태백과 함께 이를 즐기기도 하였다.

  맹자는 일찍이 “맛있는 음식과 예쁜 여자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라고 하였고 공자는 음식을 올바르게 만들어 먹는 요령에 대하여 자상한 가르침을 남겼다. 성인의 가르침이 이렇듯 자상한 탓으로 위로는 제왕으로부터 밑으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음식에 관심을 아니가질 수 없었고 음식을 만드는 조리사도 예나 지금이나 상당한 대우를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고대 국가에 있어 제사는 중요한 국가적 행사였고 이를 주재하는 주방장은 곧 국가의 총리급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나라의 6대 임금인 소강이 한때 왕실의 주방장이었을 정도이다.

  중국사람들은 요리법을 팽조라고도 한다. 그들은 요리를 예술의 한 장르로 생각했다. 그래서 유명한 요리사들에겐 팽조예술대사라는 칭호까지 부여한다.

  한마디로 말해 중국 요리는 불의 조화인 것이다. 기술이 셋이라면 불을 다루기가 일곱이라고 하여, 불이란 음식을 익히는 일차적 기능 외에도 색,향,맛을 결정짓는 요소라는 것을 잘 인식해둘 필요가 있다.

  중국 요리를 두고서 칼을 떠올리지 않으면 안된다. 이 칼들은 묵직하고 넓적해서 둔해보이지만 섬유질의 손상도 적고 장시간 사용해도 편리하다.

  중국 요리의 체계가 완성된 청나라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중화 요리를 3개의 파로 나누었다. 영남파와 남방파, 그리고 북방파가 그것이다. 요즘은 일반적으로 네 지역으로 나누는 구분법이 널리 인정되고 있다. 즉, 산동 및 북경요리, 광동요리, 상해요리, 사천요리가 그것이다. 이 네가지 요리의 특징적 차이점은 남쪽 요리는 담백하고 북쪽 요리는 짜며, 동쪽요리는 달콤새콤하고 서쪽 요리는 맵다는 것이다.

2. 중국 역사속의 음식 이야기

요(堯) 임금에게 맛있는 음식을 올린 공으로 오늘의 서주인 팽(彭)의 제후로 봉해져 팽조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를 근거로 팽조를 요리의 시조로 보는 것이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이다. 상(商)나라 초기의 재상인 이윤은 음식에 대하여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한 사람으로 그를 시조로 보는 설도 있다.

청동기 시대에 해당하는 주나라 말기에 이르면 철기가 출현하여 생산활동이 급격한 발전이 있게되고 식생활에도 큰 변화가 와서 이를 가리켜 종명정식(鐘鳴鼎食, 편종을 울려 손님을 모아 큰 솥을 걸어 놓고 음식을 차려 잔치를 함)의 시대라 한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에는 이때의 생활모습이 담겨있는데 이 책에 먹거리로 등장하는 것이 식물 130여 종, 동물 200여 종, 물고기류 19종, 가금류 38종이고 그 밖에도 소금, 장, 꿀, 생강, 계피, 후추 따위의 조미료가 보인다.

상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주(紂)에 이르면 낭비가 지나쳐 마침내는 술이 연못을 이루고 고기가 숲을 이룰 정도로 넘쳤다 하여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말까지 생기게 되었다.

주나라가 들어서고는 조리법이 더욱 발전하여 통돼지구이, 개의 간 구이 등 여덟가지 진귀한 요리가 등장하는데 이때 황제의 음식을 돌보는 관리가 208명이고 일꾼만도 2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춘추시대만 해도 사람들은 끓인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주식인 곡물도 쪄서 손으로 집어먹었다. 숟가락은 없고 젓가락은 국의 건더기를 집어먹을 때만 사용했다.

한나라가 대륙을 통일하고 개국 이래의 두통거리인 흉노를 물리치며 서역으로 진출한 것은 기원전 138년의 일이다. 이때만 해도 주식은 기장이나 보리를 먹었다. 이후 장건이 이른바 실크로드를 열며 지금의 이란, 이라크에 중국의 비단, 황금, 칠기 따위를 전하고 그곳의 말, 향료, 유리, 구슬과 함께 석류, 포도, 마늘, 오이, 호도, 향채(香菜), 녹두, 파 등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로인해 중국 황실의 식탁이 더욱 풍부해지게 되었다.

당나라에 이르면 음식 문화에 대한 기록도 풍부해지면서 조리 기법도 크게 발달하여 간석(看席)이 등장한다. 간석은 음식 차림이 눈으로 즐기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을 뜻한다. 전에는 좁쌀이나 수수를 주식으로 먹었으나 당나라 때부터는 쌀밥 먹고 비단 옷 입는 것을 사치로 여기기 시작했다. 또한 밀가루 음식이 유행했다.

송나라 때는 중국의 3대 발명품인 활자 인쇄와 나침반, 그리고 화약이 크게 활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식생활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한나라 때부터 식물성 기름을 먹기는 했으나 주로 등유로 사용하다가 송나라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먹게 되었다.

청나라는 왕실 연회에서 만주식과 한족식 요리를 모두 망라하여 만한취엔시라는 중화 모듬 요리 체계를 내놓았다.

장제스 정권이 밀려나면서 부유한 자본가들이 해외로, 홍콩으로, 대만으로 떠남에 따라 그들에게 주로 봉사하던 많은 유명 요리사들도 대륙으로 떠났고 식도락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인해 대륙의 식탁은 점점 무미건조해졌다. 그 후 개혁개방은 중국 경제를 천지개벽했을 뿐만 아니라 음식문화까지도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이다.

3. 먹는 것은 역시 광동 요리

중국 사람들이 이상적인 삶을 나타내는 말에 생재소주, 천재항주, 식재광주라는 것이 있다. 경치 좋은 소주에서 태어나, 미인 많은 항주에서 비단 옷 입고 호사하며, 광주의 좋은 음식을 즐기는 것이 사나이 대장부의 보람있는 삶이라는 뜻인데, 이 말에서 중국인들이 광동 요리를 으뜸으로 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열강의 압력을 받아 처음으로 문을 연 곳이 광주이다. 옛날부터 해외로 진출하여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간 화교의 대부분이 광동과 복건 출신이고 이들은 광동의 경제 발전에 활력을 주었다. 오늘날 광동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우며 2001년 GDP도 상해를 제치고 4,586달러로 전국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광동성은 기후가 온난하고 수산 자원이 풍부한 바다를 길게 끼고 있으며 비옥하고 넓은 농토의 중앙으로 주강이 흐르고 있다.
광주에서 팔고 있는 요리가 5,500여 종으로 딤섬 종류만 해도 800종 이상, 닭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210종이라 하니 먹는 것은 광주란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얌차는 한자로 차를 마신다는 뜻의 음차(飮茶)를 광동 사투리로 읽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광동 지방은 예로부터 찻집이 발달했다. 이 찻집은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곳이다. 이때에 먹는 음식은 정식 요리라기보다는 간식에 가까워 그들은 딤섬이라고 부른다. 얌차는 행위이고 딤섬은 목적이므로 얌차를 하러가서 딤섬을 먹는다고 말할 수 있다.

얌차집에서 중요한 에티켓의 하나는 같이 먹는 사람끼리 서로 차 따라주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내 잔에 차를 따라줄 때는 검지와 중지를 사용하여 찻잔 주위의 탁자를 가볍게 톡톡 두들겨서 고맙다는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 물이 부족하면 찻주전자의 뚜껑을 옆으로 밀어 조금 열어두는 것으로 그만이다.

광동지방에서 너무나 흔한 음식이 죽이다. 종류가 워낙 많으나 크게는 흰죽과 재(齋)죽으로 나뉜다. 흰죽은 쌀에 물을 붓고 세 시간 가량 끓여 쌀이 우유처럼 되면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여우티아오와 함께 먹는데 맛이 담백하고 상큼한 것이 특징이다. 재죽은 쌀과 함께 고기나 생선 따위를 넣고 끓인 것으로 납팔죽이 으뜸으로 친다. 음력 12월8일을 납팔(臘八)이라고 하는데 석가가 도를 깨운친 것을 기념하는 날로서 중국인들은 집집마다 각종 곡식과 과일을 넣고 죽을 쑤어 부처와 조상에게 바치고 친척이나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 이를 여러가지 맛이 난다고 하여 오미(五味)죽이라고 한다. 또 다른 대중화된 것으로는 돼지 고기, 돼지 간, 돼지 내장을 넣고 끓인 급제(及第)죽이 있다.

어느 음식점에 가도 쉽게 맛볼 수 있는 이후미엔은 밀가루 반죽을 할 때 물을 사용하지 않고 계란 노른자만 가지고 만들어낸다.

중국 요리에 있어 우리가 가장 혼란을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만두다. 만두는 중국 발음으로 만터우인데, 중국에서 말하는 만두는 속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만터우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두와 비슷한 것으로 쟈오쯔가 있고 우리의 찐빵에 해당하는 것으로 빠오쯔가 있다. 대표적인 쟈오쯔에는 하까오(새우만두)가 있고 빠오츠에는 차슈포(찐빵 속에 불고기 따위를 넣은 것)가 있다. 인쓰쥐엔은 상해 요리에 속하는 빵으로 겹겹이 하얗고 부드러운 껍데기가 실가닥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보통 고기 야채 볶음과 함께 먹는다.

광동 사람들은 닭발을 무척 즐긴다. 봉황의 발톱이라는 뜻의 뽕짜오가 그것이다. 루어뿌어까오는 한번 맛을 들이면 모두 좋아하는 무떡이다. 무를 쌀가루, 햄 따위와 반죽하여 쪄서 지져낸 것으로 위에 부담을 주지 않고 소화를 돕는다고 하여 인기가 높다.

광동 요리의 삼총사라고 하면 삶은 개고기, 참새찜, 뱀고기 수프를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개고기를 삼육탕(三六湯) 또는 향육(香肉)이라고 부른다. 주나라의 황실 메뉴에는 팔진요리의 하나로 개고기 요리가 있었고, 임금들이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 맛을 볼 때는 반드시 개고기도 같이 먹었다고 한다.

중국의 주로 남부지방에서는 뱀을 일상 식품의 하나로 먹는다. 식탁위에 놓는 하나의 요리로 취급하는 것이다.

광동 사람들이 참새를 먹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으로 털을 벗기고 꽁무니를 통해 내장을 솜씨 좋게 빼내고 기름에 반쯤 튀긴 다음 불에 쪄서 먹는다. 털을 벗긴 상태에서 참새를 통째로 한 입에 넣으면 뼈와 함께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과연 광동 요리의 3총사라고 하는 이유를 알게 해준다.

중국의 음식점 메뉴에서 쇠고기 요리는 우육(牛肉), 양고기 요리는 양육(羊肉), 닭고기 요리는 계(鷄) 등으로 표시하여 주재료가 무엇인지 밝혀주지만 돼지 고기가 주재료로 들어간 경우에는 그냥 고기 육(肉)자만 쓴다.

통돼지 구이는 광동성의 주강(珠江) 삼각지 일대가 유명하다. 새끼 돼지를 유저(乳猪)라고 하는데 이 요리는 광동 지방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갓 결혼한 여성이 첫날밤을 치룰 때 친정집에서 준비해간 하얀 천을 잠자리에 깐 후 다음날 처녀임이 입증되면 시택에서는 며느리가 친정으로 가지고 갈 예물로 통돼지를 구었다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중국요리 중의 하나인 탕수육은 대개는 꼬로우(古老肉)로 불리운다. 빠이윈주서우로 부르는 음식은 돼지 족발과 거의 흡사하지만 약간의 양념을 넣고 뜨거운 물에 삶은 탓에 허여멀금한 모양에 맛도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Posted at 2003-11-09 Sun 21:46
바이오
성체줄기세포에 관한 한,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기술을 개발한 라정찬 박사(바이오스타 줄기세포 기술연구원장)의 주장이다. 그는 “그 옛날 중국의 진시황이 찾고자 했던 불로초가 바로 우리 몸속에 예비되어 있다”고 말한다. 줄기세포(stem cell)란 조직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미분화된 세포를 말한다.
삭제하기 2018-01-02 Tue 12:25
Musta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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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하기 2013-01-19 Sat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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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하기 2012-02-03 Fri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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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하기 2012-02-01 Wed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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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하기 2011-09-13 Tue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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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하기 2011-09-13 Tue 13:22
Hiposa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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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하기 2008-07-24 Thu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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