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읽기

이름 : 김재윤
제목 : 50일간의 중국 열차 여행
50일간의 중국 열차 여행

지은이 : 윤종한
출판사 : 솔과학
출판일 : 2002. 12. 5
값 : 9,000원
다읽은날 : 2003. 5. 29

다른 책과는 달리 이 책은 비교적 수월하게 읽혔다. 책을 읽으면서 내용을 기억하려는 부담감 없이 그냥 저자의 경험담을 느끼고 넘어가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주로 쓰는 일기 형식의 문체로 씌여져 있었다.
이 책은 저자가 50여일간 중국 일대를 열차를 타고 다닌 과정을 기록한 글이다. 다고난 방랑벽이 있어 보이는 저자는 다년간 배낭여행을 해왔으며 이미 몇권의 여행기를 출판한 바 있다. 그가 이번에 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 수많은 인종들이 광활한 대륙을 메우고 있는’ 중국이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여 천진 남경, 상해, 황산, 장가계, 계림, 곤명, 성도, 라싸, 서안, 북경, 장춘으로 이어진 그의 여행 기록에는 생생한 발자취가 남아있다. 간간히 소개되는 역사적 설명이나 한시들도 여행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저자는 역시 여행 그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오디오 매니아 중에는 클래식이나 재즈에 대한 음악적 이해와 더불어 깊은 애정을 갖고있는 부류가 있고 음악보다는 소리 그 자체에 매력을 느껴서 엠프나 스피커 등 장비를 수없이 교체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가 전자의 경우라면 이 책의 저자는 후자에 속한다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 여행지에 오고가는 과정은 소상히 기록되어있지만 막상 여행지에 도착해서의 느낌이나 상세한 소개는 거의 없고 한 두줄의 글로 처리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중국의 역사적 유적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중국을 여행하고자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저자가 겪은 생생한 경험들이 적지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치밀한 준비도 없었고 중국어에 능통한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저자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여행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라고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나 쓸 수 없는 책, 그 점이 바로 이 책의 가치이다.

[요약]

1. 타이안과 취푸
진천 페리의 천인 2호는 오후 2시에 인천을 출항하여 다음날 오후 3시에 천진에 입항할 예정이었으나 안개 탓으로 실제로 천진의 신항 당고에 닻을 내린 시각은 중국 시간으로 5시 무렵이 다 되어서였다. 첫 여행 목적지는 중국 5대 명산의 하나인 태산이 있는 타이안과 공자의 공묘가 있는 취푸였다. 취푸는 타이안과 가까이 있다. 저녁 늦게 천진시짠에 도착해 암표를 구해 열차에 올라탔다. 열차가 타이안역에 도착한 시각은 이튿날 새벽 6시. 호객꾼을 따라간 곳이 철도 초대소로 하룻밤 여관비 35위엔, 싸구려 삼류 여인숙이었다.
초대소에서 알선한 공묘행 승합차 차비는 20위엔, 승합차를 타고 공자의 고향인 취푸로 향했다. 취푸에는 공묘를 비롯하여 공림과 안묘, 노성과 육례성 등 볼거리가 널려있다. 공묘에 내려 거금 20위엔을 투자하여 자전거 인력거를 탔다.
초대소로 돌아온 다음날 새벽 6시, 초대소 손님 몇 명을 태운 마이크로 버스가 무려 두어시간 동안 태안역 광장을 돌며 손님을 싣을 후 태산의 중허리에 있는 케이블카의 시발역인 중천문까지 올라갔다.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 걸어서 한시간, 그리고 천가를 지나 옥황정까지 2시간 30분, 중천문에서 옥황정까지 걸어서 1시간 30분 소요. 중천문까지는 운치가 있었으나 1,545m 정상은 심한 안개로 인해 눈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태산에 다녀온 후 초대소에서 남경행 열차표를 부탁하였다. 수수료 30위엔. 타이안역을 떠나 남경으로 향했다.

2. 양쪼우와 수양제능
07시45분, 열차가 남경역에 닿았다. 남경과 양주를 둘러보고 상해 쪽으로 빠질 작정이다. 남경역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제일 왼편이 출구이고, 중앙이 대합실과 매표소, 우측이 식당, 맨 오른쪽 끝에 CITS 사무실과 매표소가 있고 그곳에서 예매와 외국인 매표를 한다. 원하는 차편이 매진이라 이틀 후의 상하이행 열차표를 샀다.
양주행 시외버스 주차장은 남경역사를 나오는 길에 우측으로 올라가면 남경역의 철로를 지나가는 차도가 있는데 그 지하도 입구에 있다. 남경에서 양주까지는 2시간 정도가 걸린다. 양주에 도착하니 12시30분경, 수양재의 능을 보고싶더 따밍시로 갔다. 대명사 옆 9층 탑은 압권이었다. 그러나 수양제능을 없었다.

3. 난징대학살
남경역 시외버스 터미널로 되돌아왔다. 중국 국영여사에 방을 잡았다. 1937년 12월 5일부터 약 3개월 동안 일본군은 남경에서 어마어마한 약탈을 자행했다. 이것이 남경대학살이다. 일본군이 패전한 후 공식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 대장만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 교수형을 당했다. 그러나 남경대학살의 주범이었던 나까지마 중장은 남경약탈의 재물로 벼락부자가 되어 1937년 은퇴했다.

4. 황제가 된 거지 중
난방시설이 없는  시멘트 방의 딱딱한 침대에서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아침도 굶은 채 느지막히 여인숙을 나섰다. 목표는 명효능과 중산능이다. 역 앞에서 17번 버스를 타고 명고궁에서 하차한다. 9번으로 갈아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중산능인데 중산능 주변에 명효능과 능곡사 등 볼거리가 많다. 중산능은 중국의 국부 손문 선생의 능으로 약 1만㎡ 부지의 면적에 대규모 능묘가 조성되어 있다. 묘실에는 대리석관에 손문의 와상이 조각되어있고  입구에는 거대한 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에 비하면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무덤인 명효능은 역사의 파도에 휩쓸려 퇴락해가고 있었다. 17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리자 남경역이었다.

5. 상하이 마탕루 306루
남경 발 09시 특급열차는 산뜻한 호화 2층 열차에 초특급으로 승무원들의 음료수 서비스까지 곁들인, 도중 정차 없는 풀코스 직행이었다. 열차는 삽시간에 상하이역에 닿았다.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흔적을 찾지 못한 채, 임시정부 청사로 발길을 돌렸다. 상하이역 광장 오른쪽 정차장에서 109번 버스를 타고 부흥공원 부근에서 하차, 마당로 306을 향해 걸었다. 임정구지는 깨끗이 수리되어 있었다. 1층은 회의실과 주방, 화장실이 있었고 2층은 집무실의 책상과 침상이, 옆방은 국무위원 집무실이었다. 3층은 임정 활동 당시의 상황이 내용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6. 혼돈의 세계
내가 타고갈 열차표는 루안쭤였고 루안쭤 대합실은 역 청사 우측에 있다. 루안시 대합실에서 개찰을 하고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면 된다. 루안시 대합실에는 여행사가 여러 개 있어 낮에는 이곳에서 열차표를 취급하는 모양이다. 내가 타야할 열차는 23시29분 열차였다.

7. 와신상담
어제밤 상하이역을 출발한 특급열차가 샤오싱시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4시30분, 말로만 특급 2등이었지 완전 3류 열차였다. 내가 샤오싱에 온 이유는 첫째로 술 샤오싱주 때문이다. 항주와 소흥은 오월동주와 와신상담의 고장이다.
노신기념관은 이른 시간이라 문이 닫혀있어 그의 옛집만 훑어보았다. 그리고 회계산에 올라가 월왕전과 월왕대를 둘러보고 내려왔다. 그리고 그길로 곧장 항조우행 마이크로 버스를 타버렸다. 소흥에서 항주까지는 2시간 거리였고 차비는 13위엔이었다.

8. 서호와 황산
마이크로버스가 장거리 버스터미널 앞에 내려놓고 사라졌다. 여기는 동역이고 서역에 가야 황산행 버스가 있다. 동역 앞에서 502번 버스를 타고 무림로에서 하차하여 다시 30번으로 갈아타고 서역에 도착했다. 이튿날 아침의 황산행 버스표를 예약했다. 초대소 찾기가 너무 어려워서 울며 겨자먹기로 버스터미널 주변의 예원대주가 홀텔을 잡았다. 하루밤 숙박비가 거금 2백 위엔이었다. 중국의 봉급생활자 한달 평균 봉급이 6백 위엔 정도라고 하니 더욱 큰 돈으로 느껴졌다.
항주의 볼거리는 천하절경으로 소문난 서호, 서역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있다. 서호십경은 논외로 하더라도 역시 서호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항주발 08시 황산행 버스는 30~40분에 한대 꼴로 출발했고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출발 6시간 후인 오후 2시경, 버스가 툰시에 도착하면서 주저앉아 버렸다. 마이크로 버스를 빌려 황산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황산 풍경구 입구의 작은 초대소에 50위엔을 내고 묶었다. 케이블카까지 차를 대절해서 타고가는데 40위엔을 냈다. 그러나 자욱한 안개로 지척 분간이 난감했다. 그대로 차를 돌려 내려왔다.

9. 자기의 고향 징더쩐
툰시에서 징더쩐행 열차를 기다렸다. 저녁 늦게 열차를 타야하므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종일 기다려야 했다. 운좋게도 식당에 들어선 철도역 직원의 도움으로 침대표를 구했다. 그는 빗속을 오가며 형제처럼 나를 도와주었다.
23시15분 경 열차가 징더쩐에 도착했다. 호객꾼을 따라간 곳이 부귀초대소이다. 50위엔을 주었다. 빗속을 헤매며 온 이곳 징더쩐은 중국 도자기의 고향이다. 다음날 아침 초대소를 나선 시각은 8시30분 경이었다. 우선 장자지행 열차표를 구했으나 입석표인데다가 두번이나 갈아타야 한단다. 아무튼 징더쩐 시내로 들어갔다. 열차 역에서 시내 중앙 광장까지는 마이크로 버스로 두정거장이었다. 먼저 찾아간 도자관은 도자기 박물관으로 오래된 골동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징더쩐의 명물이라는 용주각은 11시30분부터 2시30분까지 점심시간이라 입장 사절이었다. 중산로 중간쯤 육교 부근의 먹자골목에서 왕만두 3개로 아침 겸 점심을 때웠다. 새내 중심가 광장은 축구장인데 관중석에 도자기 골목의 입구가 있었다. 아름답게 채색된 찬란한 도자기들이 무더기로 산적되어 있는게 아닌가.

10. 침대차와 식당차
다음 목적지는 장자지. 징더쩐에서 장자지로 가기 위해서는 두번 이상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 열차표 한쪽 구석에는 조그만 암호 같은 글자 두 자가 적혀있었다. ‘向,株’ 경유지 표시인데 향당과 주주에서 열차를 바꿔타야 한다는 표시이다.
중국 열차의 구조는 대게 일반 객차와 침대차 사이에 식당차가 있고, 식당차에 연결된 일반 객차에서 침대표를 취급하는 승무원이 있다. 차장의 사인을 받아 침대표 매표석에 가면 승무원이 침대 번호를 지정해 준다. 침대를 지정받고 열차를 찾아가면 침대 담당 승무원이 열차표를 카드와 교환해 주고 하차 역에 임박하면 승객을 깨우고 표를 되돌려 준다.
차장 곁으로 다가가 침대표를 달라고 했으나 없다고 한다. 아비규환인 객차를 떠나 간신히 식당차 승차를 허락받았다. 주방장의 호통을 듣고 자리에 앉았으나 20위엔을 내라고 한다. 주방장에게 사정해서 간신히 침대표를 하나 얻었다.
새벽 5시, 열차가 샹당 역에 닿았다. 환승 절차는 이렇다. 차에서 내려 출구를 빠져나와 매표 창구나 혹은 치안증 창구로 찾아가서 환승 스탬프를 받는다. 이때 열차번호를 기록해 준다. 열차 시간에 맞춰 열차를 타면 된다.
샹당역을 6시10분에 출발한 열차가 주조우역에 도착한 시각은 13시15분이었다. 식당차에 50위엔을 내고 자리를 하나 차지했다. 열차는 18시09분에 발차하여 이튿날 정각 12시에 장자지역에 도착했다.

11. 신들의 작품
중국여행을 하면서 꼭 가봐야 하는 곳을 한 곳만 댄다면 장자지라 하였다. 장자지행 열차의 식당차에 자리잡은 나의 옆자리에는 백학 호텔 사장인 史씨의 도움으로 하루 호텔 방값 45위엔에 묵을 수 있었다.
첫째날, 본격적인 장자지 관광은 국가 산림공원 장가계의 양가계가 있는 중호마을에서 시작된다. 마이크로버스가 중호 마을의 시장통을 꺾어 돌아 계곡으로 접어들자 저만치, 무서운 형상의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냥 넋을 잃고 서 있었다. 누군가 혼신의 힘으로 필생동안 몸바쳐 만든 작품, 아니 그보다 더욱 조화로운 신들의 걸작품들이었다. 결국 나는 2박3일 예정을 5박6일로 늘려잡았다.

12. 환상의 세계 장자지
둘째날 일정은 주로 황서짜이 주변이다. 황서짜이 정상에는 류치커라는 4층 정자가 있어 전망대 역할을 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산들의 모습은 과연 천하기관이다.
사흘째, 아침에 식당 주방장을 만나 싼 가격의 식사 메뉴를 부탁했다. 그리하여 원래는 48위엔인 식사 메뉴를 10위엔짜리로 대체했다. 계란 볶음밥과 해조류 국물탕.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공원 입구에까지 갔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 코스는 63빌딩 같은 거대한 도깨비의 허리를 타고 오르는 암벽 등반이었다. 정상에 섰을 때 탄성이 절로 터지는 거대한 동양화의 파노라마, 정말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나흘째, 오늘 관광은 구천동 지하궁전. 장자지 등산로 입구인 중호마을에서 버스로 2시간 거리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지하궁전은 커녕 지하 감옥처럼 우중충한 동굴이었다.
닷새째, 장자기 국가 삼림공원을 제대로 보려면 구천동을 제외하고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의 예정으로 보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한다. 교통편은 장자지 열차 역에 승객을 싣기 위해 각 행선지별 마이크로버스가 열차시간에 맞게 대기하고 있다. 열차는 북경에서 바로 연결되는 노선이 있고 항공 노선도 개설되어 있다. 오늘 목적지인 천자산은 중호 마을에서 비교적 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
엿새째, 장자지 시내의 몇몇 관광지를 돌아보고 꾸이린을 향해 떠날 것이다. 장자지역에서 시내까지는 차편으로 대략 20분 정도. 시내 중심가에 장거리 버스 터미널이 있고 중호행과 상찌행 등 지역별 마이크로버스 주차장은 장거리 버스터미널 주변에 있다. 백학산장 지배인에게 열차표를 맡겼는데 역 앞 어수룩한 식당에서 열차표를 갖고 온 청년은 수수료 50위엔을 요구했다.

13. 기봉의 파노라마 꾸이린
장자지에서 꾸이린까지 가려면 유조우역에서 바꿔타야만 했다. 유조우역에 2시 정각에 도착, 17시간 소요. 역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어느 노인의 도움으로 새치기표를 구입하여 간신히 2시 15분 열차에 올랐다. 광주발 계림행 특쾌 열차였다. 계림에 도착한 것은 17시10분으로 3시간의 쾌주였다.
우선 잠잘 곳을 마련해야 하고 곤명으로 들어갈 열차표도 알아 보아야 한다. ‘열차표 대행’이란 간판을 찾아갔다. 신구대주점에서 80위엔짜리 방과 열차표 그리고 내일 이강유람선 예약까지 일사천리로 끝났다. 꾸이린 관광의 핵심은 계림에서 양삭으로 흐르는 이강의 유람선 광광일 것이다. 마치 땅에서 솟아나는 죽순처럼 뾰족뾰족한 기봉들이 멀리 또는 가까이, 혹은 안개를 드리우고, 혹은 구름을 껴안고 신비롭게 앉아 있다. 유람선 광광 3시간의 파노라마는 참으로 멋진 장관의 연출이었다.

14. 기이한 미로, 쿤밍의 시린
꾸이린 발 11시25분, 쿤밍 도착, 이튿날 20시 30분, 무려 33시간의 기나긴 열차 여행이었다. 열차가 하차역에 가까워졌을 때 호텔방을 팔러 온 호객꾼의 안내를 받고 23위엔짜리 방을 찾아 청년의 뒤를 따라갔다. 결국 3인 1실의 도미토리를 혼자 쓰기로 하고 50위엔에 낙찰받았다. 쿤밍에 온 것은 쿤밍 인근에 있다는 기묘한 돌기둥의 수풀, 즉 시린(石林)을 보러온 것이다.
이른아침 역으로 돌아가 수하물 보관소에 짐을 맡기다가 시린행 버스의 호객꾼을 따라갔다. 220위엔을 내고 즉석에서 청뚜행 열차표를 건네받았다. 열차 역 앞에는 시린행 마이크로버스가 경쟁하듯 즐비하다. 쿤밍에서 시린까지는 왕복 6시간. 돌아올 때는 시린에서 국도로 나와 지나가는 일반 버스를 타는 것이 빠르다.
한마디로 시린은 구경거리 천지이다. 2억8천만 년 전, 바다 밑이었던 석회암석의 해저가 지각 변동으로 육지가 되었다는 기괴한 형태의 바위들. 글자 그대로 기묘한 바위들의 미로였다. 안내 없이 혼자 관광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15. 뤄산 따푸의 섹스 조각상
청뚜행 열차, 도중에 어메이에서 내려 뤄산의 따푸로 향하려 한다. 뤄산역 앞은 완전 시골 벽촌이었다. 뤄산역에서 시내까지는 마이크로버스로 30~40분 거리, 뤄산시내에서 대불까지는 15분 거리이다. 대불 앞에 가야 여관을 만날 수 있다. 높이 71m의 뤄산 따푸 뿐만 아니라 능운산 여기 저기에 토굴을 파고 불상을 새겨 무수한 토굴군을 이루고 있다. 밀종동 동굴 속에 새겨진 조각들은 나체의 남녀가 선 채로 섹스하는 장면이다. 동방불도를 휘돌아 불국천당으로 올라가면 천왕전이 나온다. 천왕전 뒤편 토굴속에는 그리스인 모습의 불상이 있다.

16. 촉한의 고도 청뚜
따푸의 입구에는 뤄산행이나 청뚜행 버스 종점이 없다. 그래서 지방에서 들어오는 차를 노상에서 타야한다. 오토바이 인력거를 타고 뤄산의 청뚜행 버스 주차장에 닿았다. 오전 7시 뤄산 출발, 11시50분 청뚜 도착. 교통사고로 1시간 연착된 결과이다. 마파토우푸 본점은 청뚜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인민중로2단에 내려 서 옥룡가로 꺾어서 잠시 들어가면 된다.
청뚜 역앞에서 306번 버스를 타면 종점이 무후사 정문앞이다. 유비와 제갈공명의 만남에서 유래한 삼고초려의 내력으로 무후사의 무후는 제갈량 사후, 시호인 충무후에서 따온 것이다. 초당사라는 두보초당은 당대의 시성으로 두보가 안록산의 난을 피하여 살았던 곳이다. 무후사 앞에서 두보 초당으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고장난 304번 여기사의 도움으로 17번 버스종점까지 왔다. 17번 버스가 초당사에 가는 차이다.

17. 티베트 라사의 빠코르 시장
육로로는 혼자서 라사행 허가를 받을 수 없다. 여행사를 통해 허가를 받는 방법도 있으나 패키지 여행상품을 사야 한다. 결국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09시 정각에 비행기가 라싸 공항에 도착했다. 2시간 거리이다. 공항에서 라사까지 리무진 버스가 35위엔이다. 공항버스 주차장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야빈관은 산륜차로 가면 차비 3,4위엔 정도.
라사 관광의 핵심은 포탈라궁과 조캉사원, 그리고 빠코르시장이다. 빠코르 시장은 조캉사원을 중심으로 빠코 베이쟈, 빠코난쟈 등 동서남북의 상가들로 둘러싸여진 티베트 불교 신도들의 순례도로이다.

18. 포탈라궁
2박3일의 일정으로 서두르다가 빠코르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박물관에 이르렀을 때 나는 고산병 증세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몸을 가까스로 가누었다. 결국엔 호텔 인근의 약방에서 두통약을 사 먹고 호텔 침대 위에 쓰러져 버렸다. 라싸는 평균해발 3,650m로 엄청난 고원지대이다.
이튿날의 관광은 광광의 핵심인 포탈라궁과 조캉사원 관광이다. 포탈라궁은 라사의 중심지에 위치한 채 시내 중심부의 마포리 산 언덕에 두둥실 구름처럼 솟아 있다. 7세기에 축조되어 동서 약 400m, 높이 110m, 13층 규모로 방이 1천여 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다. 빠코루의 중심 조캉사원은 6세기 중엽 티베트왕조를 건설한 송첸캄포 왕이 문성공주가 모셔온 석가모니 불을 봉안하기 위하여 지은 절이다. 포탈라궁 입장료 70위엔, 조캉사원 30위엔.

19. 양자강 유람선 동방황원호
청뚜에서 쭝칭행 기차를 탔다. 쭝칭 역에 내리자 마자 조천문 부두로 직행했다. 장강 유람선 표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수화물보관소 아가씨의 안내로 외국인 50% 할증을 내지 않고 3등석 320위엔에 표를 구했다.
정각 20시, 동방황원호가 양자강 지류를 타고 출발했다. 새벽 2시, 펑뚜 선창에 닷을 내린 배는 오전 9시30분에 출발했다. 배는 3박4일째, 밤12시에 목적지인 한커우에 도착할 예정이다.

20. 석보채
오후 1시30분 경, 동방환원호가 석보채 선착장에 닿았다. 석보채는 명나라 때 창건된 9층짜리 누각이다. 배안 매점 앞에는 다음번 관광 일정과 표를 팔고 있었다. 오후 4시20분, 만현 선착장에 닻을 내렸다. 별로 볼 것은 없는 평범한 도시였다. 삶은 소 혓바닥과 살코기, 바나나, 바이주를 곁들여 실컷 먹었다. 배가 1부두로 옮겨졌다. 잠시 배가 없어진 줄로 알고 깜짝 놀랐다.

21. 소 삼협
사흘째, 새벽5시30분. 봉절에 잠시 정박했다가 다시 출발한 배는 6시경 삼협을 지나고 있었다. 거대한 벼랑이 쏟아져 내릴 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07시 15분, 배가 무산항에 닿았다. 오늘 관광은 양자강 삼협관광의 백미인 무산의 소 삼협 관광이었다. 티켓이 80위엔.
07시30분, 무산항을 출발한 마이크로버스는 무산 소 삼협의 입구인 용문대교 앞에서 모터 보트에 나누어탔다. 구비 구비 돌고 돌아 4시간, 등천봉까지 기어오르던 보트는 주저앉아 버렸다. 대단한 협곡이었다. 돌아오는데 다시 2시간 소요. 오후 5시30분, 동방호가 파동항을 지나며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고 거대한 협곡 서릉협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구당협, 무협, 서릉협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22. 악양루와 동정호
나흘째 날이 밝았다. 밤사이 배는 삼협을 빠져나와 의창을 통과하면서 협곡은 사라지고 바다처럼 넓은 양자강이 나타난 것이다. 오후 1시15분, 배가 청릉지항에 닻을 내리자 동정호와 악양루를 관광할 승객들이 우루루 쏟아져 내렸다. 청릉지항은 웨이양 부근의 양자강 연안 항구이다. 청릉지항에서 악양루까지 왕복 2시간, 관광티켓은 25위엔이었다. 악양루는 강남 3대 명루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목조건물로 높이 15m \, 3층 누각이다.

23. 무한 황학루
무한은 양자강을 사이에 하고, 무창과 한구의 두 도시를 합친 이름이다. 무창에는 황학루가 있다. 배가 무한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 함께 배를타고 가던 중국인 신혼부부의 도움으로 같은 여관에 방을 잡았다.
이른 아침 여관을 나와 오후 3시23분 차표를 샀다. 황학루는 그 규모나 아름다움으로 보나 과연 중국의 대표적인 누각이라 칭할만 했다. 동호 역시 아름다운 호수였다.

24. 예원빈관
9시50분에 열차가 정주에 도착했다. 역에서 조금 떨어진 시장통에 예원빈관에 묵었다. 정주는 황하문명의 발상지인 역사의 고장이며 또한 동서남북으로 철도노선이 연결된 교통의 요충지이다. 그러나 나는 떠나야 한다. 볼거리 신통치 못한 곳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낙양에서 용문석굴을 만나고 시안으로 가야 한다.

25. 낙양의 도깨비 굴
정주 발 11시04분.  열차가 낙양 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30분. 역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쫓아간 아가씨는 완전히 거지 움막을 방불게 하는 움막으로 나를 안내했다. 놀다가라는 말에 기겁을 하고는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역 앞의 낙양군인호텔을 잡았다. 하루밤 거금 1백위엔이었다.
열차표가 매진이다. 호텔에 부탁하고 이발소에 갔다. 호텔로 돌아와보니 조끼 호주머니가 날카로운 면도날로 찢겨져 있었다. 열차표 살 때 소매치기가 붙은 모양이다. 다행히 잃은 것은 없었다.

26. 용문석굴
오늘 관광 목적지는 용문석굴과 석굴로 가는 길목의 관림당, 용문석굴 건너편의 백원이다. 용문석굴행 버스는 낙양역 앞에 있고 그 앞이 용문행 81번 버스 종점이다. 81번 버스는 용문석굴 다음 역인 백원 앞에서 차를 돌려 되돌아온다.
용문석굴은 황하의 지류인 이하 강변의 암벽에 새겨진 석굴군으로 돈황의 막고굴, 대동의 운강석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로 알려진 이름난 석굴이다. 이하의 양쪽으로 1,300여 개의 석굴이 있고 석굴 안에 크고 작은 불상이 10만 개나 새겨져 있다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용문석굴은 완전히 파괴되어 누더기로 변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용문석굴을 따라 흐르는 이하를 건너면 백원앞 버스 종점이다. 백원은 작은 공원으로 언덕 위에는 당대의 시인 백거이의 무덤이 있다. 언덕의 회랑에는 비파행을 비롯한 백낙천의 시를 새긴 석판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27. 진시황의 비밀
열차가 시안역에 닿은 시각은 저녁 7시40분 경, 젊은 청년을 따라간 곳은 싸구려 여인숙 골목이었다. 2백위엔짜리 호텔방을 옥신각신 억지를 부린 끝에 3일간 하루 1백위엔에 낙찰봤다.
진시황 병마용 갱은 한마디로 ‘대단하다’. 역 앞에서 일일 관광버스를 타면 1백~2백 위엔의 차비로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값싸게 가려면 병마용갱행 마이크로버스를 탄다.

28. 화청지
화청지는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 사이의 러브 스토리가 시작된 최초의 무대로서 진시황 능의 병마용갱 가는 도중에 있다. 주나라 때부터 전해진 온천지대라고도 하니 3천년의 역사를 지닌 셈이다. 몇 개의 사원과 양귀비가 사용했던 욕탕의 흔적, 호수와 정자, 그리고 서안 사건 때 장개석이 감금되었던 역사의 무대 등이 남아 있었다.

29. 여황제 측전무후
아침 8시에 호텔을 나왔다. 측전무후가 잠들어 있는 곳은 시안에서 75km쯤 서북쪽에 위치한 츄안시아의 양산 기슭이다. 입구에서 바라보면 마치 누워 있는 여성의 배꼽에서 얼굴을 바라보는 것 같다. 마치 기획하여 조형한 것처럼 완벽한 지형이었다.
서안에서 건현까지 마이크로버스로 2시간30분, 건현에서 건릉까지는 오토릭샤로 20분 정도, 땀을 뻘뻘 흘리며 능묘를 대충 훑어보았다. 도대체 양귀비 묘는 어디쯤 붙어 있는가?

30. 마외파 양귀비 묘
건릉에 들렀다가 양귀비 묘를 보려고 싱핑으로 갔다. 동그마니 작은 벽돌 조각으로 덮여 있는 무덤 앞에는 ‘양귀비 지묘’라는 작은 비석 하나만 서 있다. 뜨락의 중앙에는 등신대로 흰 빛으로 감싸진 그녀의 입상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31. 빠다링 창청
19시20분 서안발 42호 특급열차가 베이징 서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20분. 빠다링 행 버스는 첸먼 지하철 역 담장 뒤에 있다. 빠다링은 만리장성이 버티고 있는 곳이다. 왕복 6시간. 산맥의 능선을 타고 산 정상을 이어가는 거대한 성벽, 만리장성은 과연 만리장성이다.

32. 서태후와 이화원
북경역 앞에서 자전거 인력거에 가서 값싸고 실속있는 삔관을 물었다. 소개비 30위엔에 자전거 인력거를 타고 닿은 곳이 용담호텔 지하 2층 도미토리였다. 독방을 원했던 나는 침대 7개가 있는 다인방을 혼자 사용하기로 하고 하루 방값 46위엔을 지불했다.
이제 이화원을 구경할 차례이다. 이화원은 베이징 서북쪽에 있는 청나라 시대의 여름별궁이다. 곤명호를 끼고 펼쳐진 궁궐의 모습은 정녕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서태후는 이화원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아편전쟁과 의화단 사건으로 훼손된 이화원을, 국고를 탕진하면서 재건한 모습을 보면 이화원에 대한 그녀의 애착을 느낄 수 있다.

33. 노구교 사건
베이징의 변두리, 먼지 때문에 길이 엉망인 데다가 비포장도로에 버스는 낡아빠진 털털이다. 내가 찾고있는 것은 중일전쟁의 시발지인 노구교이다. 베이징 남서쪽을 흐르는 영정하에 놓여진 백색의 돌다리로 1,189년 금대에 만들어졌다. 난간에는 486개의 사자상과 석주 등의 조각이 있어 그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져 있다. 서역에서 309번 버스를 타면 된다.

34. 고궁 자금성
오전 8시, 롱탐호텔 지하 골방을 출발하여 버스와 전철을 번갈아 타면서 천안문 광장 앞, 첸먼 전철역에서 내렸다. 천안문과 자금성을 한바퀴 도는데 한나절이 걸렸다. 과연 중국다운 면모였다. 궁궐 뒷산인 경산으로 올라갔다.
왕푸징에 위치한 북경오리구이 원조로 소문난 전취덕을 찾아가 셀프서비스로 오리구이 한접시, 감자튀김과 음료수를 곁들여 50위엔을 내고 먹었다. 이를 쑤시면서 천단공원으로 향했다.
천단은 청대의 황제가 하늘에 풍년을 빌었던 곳으로 특히 못을 사용하지 않고 건축된 3층 목조의 기년전은 정말 아름다웠다. 버스를 타고 다시 첸먼 전철역으로 갔다. 인력거꾼을 불러 북경의 이태원이라도 볼 수 있는 조회시장가에 갔다. 일본 대사관 옆이다.
내일이면 통화를 거쳐 집안으로 떠난다. 첸먼 지하철 동청출구로 올라가서 남쪽 계단으로 빠져나가면 건너편 지하도 입구 구석 쪽에 열차표 예매처가 있다.

35. 광개토대왕
18시13분, 베이징역을 출발한 열차가 통화역에 닿은 시각은 이튿날 낮 12시40분경이다. 통화역 앞, 조선족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집안행 버스에 올랐다. 지안은 기원전 37년부터 427년까지 약 490년 간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의 옛 터전이다. 시내 곳곳에는 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해 수많은 왕릉과 고분군이 흩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광개토대왕비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장군능과 광개토대왕비를 찾아왔다. 장군릉은 상당한 규모의 적석총으로 마치 작은 피라미드를 연상시킬 정도로 거석으로 쌓아올린 고분이었다. 광개토대왕비는 장군능 부근에 있다. 높이 약 6.5m, 폭 2m, 두께 1m의 자연석으로 네 면에 모두 음각으로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제 이번 내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가 될 장춘으로 떠난다. 오천 년 중국 역사에 기멸한 수많은 황제들 중 마지막 황제로서 파란의 일생을 마친 인간 부의의 흔적을 더듬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36. 마지막 황제
통화 발, 장춘 행 21시50분 야간열차. 난방 없는 열차는 찬바람이 얼음처럼 차갑다. 새벽 5시40분, 열차는 장춘 역에 닿았다. 지도와 시간표를 사고 베이징행 열차표를 샀다. 장춘 역 2층 예매 창구에서 침대표를 팔고 있었다.
만주국 황제 부의의 황궁이었던 위황궁은 마치 시골의 읍 사무소 같은 초라한 모습이었다. 위황궁은 길림성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별관에는 만주국황제 집무 당시의 생활도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초라한 황궁의 주변은 농수산물 시장과 남민 수용소 같은 빈민가에 둘러싸여 분위기마저 을씨년스러웠다. 마치 추락한 황제의 말로를 대변하는 것처럼.

37. 4차선상의 공포
장춘 발 18시47분, 열차명 홍기, 베이징 도착 06시18분. 중국에서 타 본 열차 중 가장 빠르고 호화로운 특급열차였다. 시간표에는 장춘 발 천진행 열차가 있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열차표도 없었다. 북경에서 천진까지는 버스편이 편리하고 2시간 거리이기 때문에 북경으로 다시 들어간 것이다.
열차에서 내리자 호떡 두개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30분 정도 지났을 때 청장년 사내 몇 명이 야바위판을 벌였다. 한동안 왁자지껄 떠들다가 싸움이 벌어졌는데 한동안 주먹다짐으로 소동을 벌이던 사내들은 고속도로 상에 차를 세운 뒤 유유히 사라졌다.
11시40분, 천인2호는 천천히 당고신항을 빠져 나가고 있다. 우중충한 부둣가 녹슨 크레인들이 차츰 멀어져 간다.
Posted at 2003-11-09 Sun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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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하기 2011-09-13 Tue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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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하기 2011-09-13 Tue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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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하기 2011-05-11 Wed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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