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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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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98] 졸업여행 - 세번의 감동.. 김재윤 2004/01/16

안녕하십니까?
아마도 북경에서 올리는 마지막 편지가 되겠군요.
그동안 저는 기말 시험을 보았고 성적표와 졸업에 대한 합격증서도 받았습니다. '우수운' 성적으로.. 15명이 시작해서 끝까지 마친 학생이 10명 정도 됩니다.
(사진 : 최후의 생존자들..)

시험을 마치고 반 친구들과 함께 하루 시간을 내서 따통(大同)에 갔었습니다. 친한 중국인 친구가 따통에 사는데 한번 놀러오라고 하길래 어쩌다보니 반 친구들 4명이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북경서역에서 밤 11시29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8시간을 달려 아침 7시반에 따통역에 도착했습니다. 역앞에서는 친구와 더불어 친구 아버님이 함께 마중나와계셨습니다. 친구의 안내로 버스나 타고 다니며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고맙게도 미니벤을 대기시켜놓고 한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차를 타고 근처 식당으로 가서 두종류의 면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남쪽으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현공사'라는 절을 방문했습니다. '공중에 떠있는 절'이라는 의미의 '현공사'는 절벽 중간에 말뚝을 박아 세운 기상천외한 절이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위험천만한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것도 고행의 하나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현공사에서 나와 점심식사를 하는데 친구 아버님이 39도 짜리 바이지우(白酒)를 권했습니다. 처음 세잔은 의무이고 그 다음부터는 원하는 대로 마시는 것이 규정이라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권하는 통에 우리 일행은 대낮부터 바이지우(白酒) 3병을 비우고 얼큰하게 취해버렸습니다. 취한 김에 구경가지 말고 여기서 계속 술이나 마시자고 제안하자 크게 웃으며 좋다고 하시더군요. 무척이나 사람들을 편하게 대해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낮부터 술에 취해서 버스안에서 쓰러져 자다가 30여분만에 따통의 유명한 관광지인 윈강석굴에 도착했습니다. 1Km에 걸쳐 펼쳐진 언덕에 동굴 같은 구멍이 숭숭 뚤려있고 그 속에 무려 5만1천개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큰 것은 6층 짜리 건물 만큼이나 높았지요.  술취한 때문에 카메라도 차에 두고 내리고 그나마 목에 걸려있던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몇장의 사진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윈강석굴을 갔었는지 꿈을 꾸었는지 분간이 안되었을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영하 20도에 육박하던 날씨가 기적적으로 풀려서 낮 최고기온 영하1도의 '온화한' 날씨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윈강석굴 벤치에 쓰러져 자던 저는 동태신세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버스로 돌아와 쓰러져있다가 시내에 있는 절과 9개의 용이 조각되어있는 구룡벽을 구경하였는데 중국에 있는 것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경을 마치고나자 5시반이 되었는데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고 밤기차로 도착하여 아침부터 돌아다니다보니 몸도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친구 아버님이 안내하시는데로 따라가다보니 어느 빈관(호텔)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방열쇄를 건네주며 쉬었다가 저녁식사 때 내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호의에 다시한번 감동을 느끼며 고맙게도 방에들어가 샤워를 하고 쉬었다가 1시간 쯤 후에 식당으로 갔습니다.

식당의 예약된 방에 들어가자 친구의 어머님도 와계셨는데 우리 일행은 너무도 황송하여 몸둘바를 몰라했지요. 친구 아버님께서는 중국인의 식사 예절로서 좌석에 앉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20여가지가 넘어보이는 요리가 끊임없이 계속 나왔고 역시나 39도 짜리 바이지우(白酒)가 어김없이 식사자리를 빛내주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점심 때와 달리 많은 얘기가 오간 덕분에 3시간여 동안 계속된 식사시간 중에도 바이지우(白酒) 2병으로 끝낼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친구는 아버님과 친구처럼 지낸다고 했고 아버님도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 보였습니다. 일행 하나가 중국에서 남자가 밥을 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친구 아버님께서는 그런 것은 고정관념이고 빨리 바꿔야 한다고 얘기하더군요. "유능한 요리사는 대부분 남자이다. 여자는 이것을 해야하고 남자는 저것을 해야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나도 요리를 잘 한다." 그러면서 남녀평등에 대해 매우 강조했는데 "여기서의 평등이란 관념상의 평등이지 현실상에서 반드시 똑같이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는 말도 했습니다. 워낙 장황하고 고차원적인 얘기들이라 초급 실력의 우리들로서는 대략적인 의미만 이해할 수 있었지요.

남녀 평등과 관련해서 저는 약간의 장난기가 발동하여 일전에 수업시간에 했던 질문을 다시 해보았습니다. "한국인의 관습에 따르면 집안에서 남자가 혼자 직장을 다니는 경우가 많고 이 때 부인은 아침 식사를 차리고 남편이 출근할 때 마중나와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부인들 경우에는 남편이 출근할 때 침대에서 조차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경우인가요?(남녀평등을 넘어서서 남성 불평등 아닙니까?)" 별다른 대답 없이 웃기만 하시더군요.

분위기가 한창 화기애애하게 무르익을 즈음 일행중 한명이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중국에는 당이 하나입니다. 공산당. 그럼 공산당은 누가 비평을 하는가요?" 갑작스런 질문에 조금은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친구 아버님은 이렇게 대답하시더군요. "그것이 중국이 안고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병에 걸렸다고 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치료가 필요한 것일 뿐이다." 그러자 다시금 질문을 했는데 이번에는 "중국인들은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공산주의를 선택했을까요?" 갑자기 등골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더군요.

중국인이 초대한 만찬석상에서 민감한 정치적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은 대단한 결례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직접 안내를 하며 호의를 배풀고 있는 터에 굳이 그런 얘기를 꺼내어 마음을 상하게할 이유가 없었고 더군다나 중국의 정치와 역사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결론을 예단하여 내던지는 질문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경직되었고 저는 서둘러 사태를 진화해야했습니다. 질문을 한 일행에게 그런 질문은 이 자리에서 적절하지 않은것 같다고 얘기해주었고 친구 아버님께도 "한국인의 생각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닙니다. 청나라 시대에 수많은 문제가 있었고 신중국 탄생 이후 최근의 커다란 발전은 대단한 성과입니다."라고 치켜세워주었다. 갑작스런 두번의 질문에 당황하여 얼굴이 굳어져있던 친구 아버님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약간은 슬픈 표정이 내비쳤습니다.

분위기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저는 우스게소리를 한답시고, "한국인들도 고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식탁위에 고기반찬이 없을 경우 이렇게 얘기하지요. '초원이네~' "
하지만 한번 업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는 것일까요? 냉랭해졌던 분위기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고 농담을 꺼낸 저만 머슥해졌습니다. 술잔을 두어번 부딛히며 건배를 하고 시간이 좀더 지나서야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고 저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술을 마시고, 도데체 식사는 언제 하는 것인지.. 쌀이 목에 안들어가니까 밥을 먹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9시 반경이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식사 전에 밖에 나가서 준비해온 술을 감사의 표시로 드렸지요. 아뭏든 중국인 일가족과 함께 식사하며 좋은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서 30여분간 휴식을 취한 후에 10시가 조금 넘어서 준비된 차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습니다. 친구 아버님께서는 기차역까지 배웅나와서 생수를 한병씩 나눠주시며 환송을 해주었습니다. 다시한번 잔잔한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자식의 친구들을 이렇게까지 환대해주는 부모가 우리나라에도 있을까 싶더군요. 10시 40분에 출발한 밤기차는 다음날 6시40분 경에 북경서역에 도착했습니다.

이로서 저의 북경에서의 생활도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는 것도 없고 말한마디 못해 좌충우돌하며 고생했던 기억이 먼 옛날 일처럼 느껴집니다. 사스때문에 난감해하던 시절도 있었고 여기저기 여행다니며 행복해했던 추억들, 그리고 외우는 숙제 때문에 하루종일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냈던 지난 여름의 기억도 떠오릅니다. 여기 오기 전과 지금과 비교한다면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중국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뜻밖에도 그것은 중국에 꼭 와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언제고 기회가 오면 중국에서 일하고 싶지만 그러나 무리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저 물 흐르듯이 때가 되면 뜻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중국에서의 생활에 어느정도 질렸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만큼 한국이 그립기 때문일까요?

그동안 저를 염려해주신 선배, 동료, 후배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즐거운 설날 되세요~


2004년 1월 16일

북경에서  김 재 윤  올림
18. Champ [10/28] Check that off the list of things I was coneusfd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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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김재윤 [04/11] 히히.. 고쳤다..
10. 반장 [04/10] 형! 근데 불쑥 꺼낸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대화의 흐름상 피해가기만은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게다가, 미숙한 표현때문이긴 했지만, 정치적인 접근을 하려던것도 아니구요. 가이동해주시길..
9. 반장 [04/10] 정치적인 얘기를 하려고 했던것은 아니었는데, 아버님께오서 꺼내신 화두에 미처 말을 거두지 못했던 것이 실수였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 회상하고 있습니다.
8. 김은경 [04/04] 이거..읽어보니까 그때 그 생각이 막 솟아나는게..
정말 영화같은 일이었죠...으으...즐거웠는데...T_T
7. [01/21] 따뜻함을 꿈꿀 수 있는 설이 되거라
어제밤에 내린 하얀 눈처럼...
6. 김재윤 [01/20] 모두들 고맙네. 즐거운 설 보내세~
5. 호철 [01/20] 졸업을 축하한다. 고생도 많았고, 보람도 컸으리라 생각된다.
성대한 귀국 파티가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돌아오시게 친구....
4. 진서 [01/19] 졸업 축하드립니다!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북경에서 온 편지도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책 한번 내시죠.
2월에 뵙겠습니다.
3. fafa [01/19] 드뎌 오는구나.. 고생많이 했다. 여행기의 그 아버님이 참 인상적이네..자네는 복도 많네..그런 호의도 받고.. 그 유명한 석굴을 취해 돌아다닌 것은 참 아쉽다. 곧 보자.
2. 김재윤 [01/18] 고맙다~ 낼 간다~
1. 현모 [01/17] 짝짝짝~~~. 재윤아, 1년동안 수고 많이 했다. 이제 한국 들어 오는거냐?
들어오면 술 한잔 하자꾸나. 중국 생활 무사히 마치고 졸업하게 된것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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