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14일, 금
◈사진을 찍고 PC방에 가다
어제 무리한 탓인지 몸이 안좋았다. 아침을 느즈막히 일어나서 길을 나섰다.
오전 11시에 북경어언대 남문 옆에 있는 사진관에 들러 증명사진을 찍고 어제 촬영한
필름을 맡겼다. 증명사진은 다음날 오전 10시에 찾는 조건으로 16위엔을 지불했다.
당일 찾으려면 더 비싸다고 했다. 맡긴 필름은 다음날 오후 2시에 오라고 한다.
다음날이 토요일이라서 사진관이 휴무이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을 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등록을 해야하고 이때 증명사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토요일도 문을 여는 것 같았다.
사진관을 나와 중국은행으로 갔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번호표를 뽑나들었다. 182번이었다. 전광판은 90번대를 달리고 있었다.
아풀사~ 의자에 앉아 한시간 정도 기다렸다. 거의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점심식사라도 하고 올 생각으로 밖으로 나와 동네를 한바퀴 돌았지만
마땅히 먹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몸이 으스스한 것이 영락없는 몸살기운이었다.
30여분만에 다시 은행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까 나올 때 창구에 서있던 손님이
지금도 서있는 것이었다. 놀랠 노자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부품이 망가져서
수리하고 어쩌고 하다보니 30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어언대 근처 은행이라 그런지 유학생들이 절반 이상을 넘었다. 학생들은 처음 이곳에
도착하여 통장을 만들고 돈을 환전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창구의 직원은 매번
말이 통하지 않아 학생들과 씨름을 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한국말로 안내문
하나 붙여놓으면 모두가 편할텐데.. 통장만들때 사용하는 양식이 무엇인지, 그리고
견본으로 어떻게 써야하는지 보여주고 창구에서 물어보는 것이 무엇인지, 비밀번호는
몇자리고 눌러야 하고 엔터키는 무엇이고 두번 반복해서 눌러야한다는 사실을
간단히 설명해서 붙여놓으면 은행직원과 학생이 매번 저렇게 얼굴을 붉히고
고생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다시 자리를 잡고 않아 기다렸다. 다행스러운 것은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이라
업무를 보지 않는 것으로 알았는데 계속 업무를 보는 점이었다. 은행 직원들 중 상사로
보이는 분이 밖에 나가서 도시락을 사가지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뭏든 점심시간에도 손님들을 위해 일하는 모습이 고맙게 생각됐다.
그런데 업무처리 속도가 너무 느린것 같았다. 아마도 한국 은행에서의 3분의 1 수준정도
되는것 같았다. 오늘의 경우는 유학원에서 단체로 20여명이 몰려와서 더욱 늦어졌고
한건한건 처리시간도 오래 걸렸다. 의사소통의 문제가 큰 것으로 생각되었다.
뒤에온 손님이 창구에 달려가서 새치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통장을 만들거나 돈을 찾을 때 숫자키보드를 내밀고 손님이 비밀번호를 누르게 하는
시스템은 참 좋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청구서에 비밀번호를 기재하고 잘못해서
버리고, 범죄에 이용당하고... 우리도 속히 도입해야할 시스템이라고 생각된다.
이제부터 외출할 때는 반드시 책을 들고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래도 대기번호 시스템이 갖춰져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과거에는 어떻게 했을까?
창구마다 길게 늘어서서 줄을 서서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기다려야 했다면 그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겠는가?
은행에 비치된 TV에서는 계속해서 계몽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었다. 제도를 바꾸거나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 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문화혁명도 역시 사람을 변화시키고자하는 성급한 시도였고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이
역사적인 평가이다. 앞으로 중국이 한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에서
성공해야만 할 것이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3시간만에 내 순거가 돌아왔다. 앞서 많은 사람들이 창구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본 터라
약간은 긴장하여 통장개설 신청서와 여권과 50달러를 내밀었다. 다행이 별다른 문제 없이
2~3분만에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3시간을 기다린 결과였다. 운전면허증을 처음 발급받았을 때의
감격이 밀려왔다.
몸이 좀더 않좋아졌다. PC방에 가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20여분 거리이다.
자전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가보았던 슈퍼 건너편에서 PC방을 발견했다.
이때가 2시30분, 학생증을 제시하면 싸게 이용할 수 있나보다. 나는 아직 등록전이라
일반으로 사용했다.
1시간에 20위엔. 컴퓨터는 중국어로 나왔다. 메일을 보내려는데 한글이 찍히지 않았다.
더듬더듬 영어로 써내려가다가 다시금 생각했다.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익스플로러 보기 메뉴에서 한글을 선택했다. 그리고 윈도우 화면 우측 하단의 언어 선택
아이콘을 눌러보니 아까는 없었던 조선어 메뉴가 나왔다. 조선어를 선택하자 한글이 찍혔다.
만세다~ 그동안 도착한 이메일을 확인하고(대부분 쓰레기 메일이지만..) 개인메일에 대한
답장을 쓰고는 시간을 봤다. 벌써 한시간이 다 되어갔다.
PC방을 나와서 슈퍼에 갔다. 슈퍼에 들어서자 중국음식 특유의 냄새가 진동했다.
몸이 않좋은 터라 더욱 냄새 적응이 어려웠다. 먹을것과 슬리퍼, 휴지, 문구류 등을 샀다.
53.78위엔을 지불했다. 매장에 처녀김치라는 상표가 있었지만 어떤 맛일지 자신이 없어
나중에 사기로 했다.
구입한 물건을 가방에 챙겨넣고는 끙끙대며 숙소를 향해 걸었다.
슈퍼앞 버스정류장을 유심히보니까 726번 버스가 천안문광장 남쪽의 前門을 간다고 써있다.
다음번에는 버스를 타고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방으로 들어와서 빵과 우유로 늦은 점심을 대신하고는 오후 5시경부터 침대에 누웠다.
잠이 쏟아졌다. 중간에 한두번 깼지만 계속 잤다. 다음날 7시반에 일어났으니
무려 14시간 반을 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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