σ Kim Jae 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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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시내지도>

 

  • 호프브로이 하우스의 추억 - 뮌헨

파리에서 3일을 지낸 후 4일째 되는날 아침, 동역에서 뮌헨 중앙역(Munchen hbf)으로 향했다. 장장 9시간이 소요되는 긴 거리였다. 유럽의 기차는 왜 모두 의자를 마주보도록 배치한 것일까?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멀뚱멀뚱 쳐다보며 가기도 어색하고.. 며칠 후 쮜리히에서 밀라노로 가는 기차안에서는 서로 처음 만난 이탈리아 아주머니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한 바탕 토론의 광장을 열었었다. 그러나 파리에서 뮌헨으로 가는 기차는 적막감이 돌았다. 내 앞자리에는 40~50대 아저씨가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았음직한 자존심 강하고 고집이 아주 쎄보이는 하늘로 치솟아오른 메부리코를 갖고 있었다. 그 옆의 아주머니도 부자집 마나님 같은 이미지로 그야말로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파리를 떠난 지 한참 되자 역무원이 독일인으로 바뀌었다. 기차 운행 시각표를 나누어주었다. 기차가 정차하거나 지나가는 모든 역과 시간이 표시된 운행시간표였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역을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 지나가는 것이었다. 다른 유럽 국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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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독일에서는 '뮌센'으로 발음한다) 중앙역에 도착하여 역사 밖으로 나갔다. 중앙역은 여러 가지 교통수단이 집결된 곳이다. S-bahn은 외곽지대를 운행하는 기차로 다음날 퓌센으로 갈 때 타고갔다. U-bahn은 지하철이고 시가지를 달리는 전차인 트램이 있다. 뮌헨 시내의 볼거리는 걸어다니면서도 구경할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중앙역에서 나와 오른쪽 큰길을 따라 북쪽으로 쭉 걸어가자 큰 교차로가 나왔다. 지하도록 내려가서 빵집에 들러 빵을 사 배낭에 넣었다. 독일 빵집이었다. 비상식량인 셈이다. 지하도 건너편으로 나오자 중앙의 분수대를 중심으로 칼스광장이 있었다.

 

유럽에는 참으로 광장이 많다. 광장이라고 해봐야 몇백명이 모이기도 힘든 작은 규모가 대부분이고 과거 여의도 광장과 같이 백만명씩 모이던 그런 곳과는 개념이 틀렸다. 한일월드컵 때 시청앞 광장(?)에 수십만명이 운집한 모습을 보았을 때 유럽인들의 놀라움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쮜리히에 갔을 때 강가 옆의 밸뷰 광장은 그냥 교차로 중앙에 매표소 같은 건물이 하나 덩그마니 있을 뿐이었다. 아무튼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곳곳에 광장이 만들어져 있고 그 주위로 주요 건물과 상점이 들어서 있어서 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곳이 많았다.

칼스 광장에는 아주머니들에게 특히 유명하다는 쌍둥이칼 매장이 있었다. 아마도 그옛날 일제 코끼리 밥통마냥 절대적인 신임과 인기를 끄는 제품인 것 같았다. 나도 선물할 요량으로 칼을 한두 개 사볼까 했다. 그러나 다음날 이때문에 겪게될 고초를 예상치는 못했다. 광장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 입구에는 칼스문이라고 하는 것이 서 있었다. 중세 유럽의 성문을 연상시켰다. 문을 지나가자 보행자 전용도로인 노이하우저 거리가 나왔다. 상점이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 뮌헨 시내관광의 중심지라할 수 있는 마리엔 광장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길거리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과일맛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천천히 걸었다. 왼쪽으로 프라우엔 교회가 나타났다. 양파 모양의 쌍둥이 탑이 특이한 모습이다. 1488년에 완성되었고 탑의 높이는 100m에 이른다고 한다. 이 곳을 지나면서 우리나라 명동거리와 명동성당도 외국인의 눈에는 볼거리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덕수궁이 외국인이 뽑은 서울시내 최고의 광광지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적어도 서양인의 눈에는 우리나라 옛 궁궐의 모습이 생소하기 그지 없는 볼거리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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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지나치는 프라우엔 교회를 요모조모 살펴본 후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머지 않아 마리엔 광장이 나타났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19세기 말에 지어진 신시청사였다. 하루 한두 번씩 시계탑에서 인형극이 펼쳐진다는 신시청사, 그러나 그 건물은 무척 때가끼고 낡아 보였다. 오래 전에 서울의 신세계 백화점 건너편에 위치한 한국은행 건물 외벽을 청소한다고 대대적인 작업을 벌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뮌헨의 신시청사 건물을 보면서 깨달았다. 건물을 아주 깨끗이 관리하던가 아니면 아예 청소하지 말고 때가 더덕더덕 끼게 놔두던가 해야한다 라고 말이다.

배가 출출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행안내서에 소개된 해산물 전문 패스트푸드점인 NORDSEE를 찾아나섰다. 지도를 보면서 광장 주변을 뺑글뺑글 돌다가 성령교회 근처에서 노천시장을 발견했다. '각종 생선으로 만든 생선 튀김요리, 해산물 샌드위치 등 다양한 종류의 해물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을 닫았다. 시계를 보니 초저녁 시간이었다. 파리와는 달리 이곳 독일은 영업시간을 칼같이 지킨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래서 쌍둥이 칼이 유명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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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요리에 실패한 나는 곧장 그 유명하다는 맥주집 '호프브로이 하우스'로 향했다. 지도를 보며 꼬불꼬불 길을 찾았다. 길거리에는 아주 오래된 차에서부터 최신형 BMW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차들이 돌아다녔다. 뮌헨 시내의 택시들은 모두가 벤츠였다. 몇 년 전 네델란드 암스텔담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밤에 시내 구경을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택시들이 모두 벤츠였다. 그 중 유일하게도 쏘나타 한 대를 발견하고는 냉큼 올라탔다. 택시 기사에게 내가 이 차를 만든 회사에서 왔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손짓 발짓을 해가며 설명을 했는데 기사아저씨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혹시 차가 말썽을 부렸던 것은 아닐까...

호프브로이 하우스는 뮌헨을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들러 여행중 쌓인 피로를 한잔의 맥주와 함께 날려 버리는 곳이다. 여행 안내서에는 이곳이 너무 소란스럽고 종업원이 불친절하여 실망할 수도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대충 각오를 하고 입구에 들어선 순간 넓은 홀 안에서 들려오는 밴드 소리와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러나 싫지 않았다.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였고 누구하고나 쉽게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고 아무 탁자건 빈 자리가 있으면 앉아서 가볍게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홀 중앙의 밴드를 지나 빈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한참 후에야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40이 넘어보이는 아주머니가 독일의 전통 의상 비슷한 스타일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기차에서 만났던 독일 승객들의 분위기였다.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보면 인상이 굳어있어 불친절한 느낌을 갖는다고 하는데 독일 사람들이야말로 그랬다. 맥주 1천cc와 모듬 소세지 않주를 시켰다. 종업원은 거의 사무적인 태도로 주문을 받고는 사라졌다. 그러나 독일에 와서 그 유명한 독일 맥주와 소시지를 먹게 되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앞 자리에 앉았던 손님은 원치않던 맥주가 나온데 분개하여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그런 곳이었다. 애당초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괜찮은 곳이었다.

맥주를 시켜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러나라에서 여행온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홀 가운데 위치한 밴드는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 할아버지뻘 되는 분들이 경쾌한 민속 음악을 때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팝을 연주해 분위기를 돋구웠다. 건너편 자리에서는 학생으로 보이는 동양인 여자와 서양인 남자가 음악에 맞추어 함께 춤을 추고나서 연락처를 교환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웠고 순수해보였다. 맥주가 나왔다. 푸짐한 모듬 쏘세지를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딸랑 너댓개의 소세지가 큰 접시 안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순간 허무함이 온 몸에 휘몰아쳤다. 똥을 누려고 잔뜩 인상을 쓰며 온갖 힘을 주었는데 방구만 피식~ 하고 나왔을 때 '허무~'하다고 했던가?

맥주를 몇모금 마시고 있는데 어느 한순간 귀에 너무도 익숙한 음악이 흘렀다. '아리랑' 이었다. 아저씨 밴드가 경쾌한 느낌으로 아리랑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한국 여행객들이 주위에 모여들었다. 밴드 앞에 어느 용감한 여학생이 나와 신나게 지휘봉을 휘둘렀다.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아리랑을 불렀다. 곡이 끝나고 모두들 환호와 박수를 쳤다. 그리고는 이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박수 다섯 번"과 "대~한민국"을 외쳤다. 홀안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밴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무 우리 분위기에 휩쓸려 우리끼리 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월드컵이 가져다준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여기가 독일이었으니 망정이지 이탈리아나 중국이었으면 한 바탕 싸움판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흥겨운 곳이었다.

호프브로이하우스를 나와 오던길을 되돌아 숙소로 향했다. 거리에는 이미 어둠이 짇게 드리워져 있었다. 곳곳의 상점 앞에는 홀로 나와 첼로를 연주하거나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거리 악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오는 길에 숙소 앞에서 피자헛을 발견했다. 피자헛 우수고객인 나로서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가게 안으로 빨려들어가 피자 두조각을 사들고 나왔다. 숙소에 돌아와 피자를 먹으며 생각했다. 아~ 사발면이라도 가져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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